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일본의 피해자 행세 (문단 편집) === [[좌파]] 운동의 실패 === 좌파 운동의 실패로 인한 일본 정계의 보수 일변도 역시 일본의 역사 인식에 적잖은 영향을 미친다. 일례로 [[서독]]의 경우에도 [[1960년대]] 중반까지 과거사 청산이 비교적 미흡한 편이었다. 나치에 대한 서독 자체의 처벌이 약해 많은 나치 잔당 출신들이 서독 정계에 빠르게 복귀했으며 독일 사회 분위기도 나치에 비교적 온정적이었다. 그러나 [[68운동]]을 계기로 독일 사회는 과거사 청산을 향해 한 발자국 나아갔으며 결국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당선된 [[빌리 브란트]]가 [[동방 정책]] 도중 바르샤바에서 [[폴란드인]]들을 향해 무릎을 꿇고 전후 국경인 [[오데르-나이세 선]]을 인정하는 상황이 전개되었다. 반면 일본에서는 [[전공투]] 운동이 있었고 [[적군파]]와 같이 과격 단체도 생겼지만 사회 전반적으로 [[좌파]]가 성공하진 못했다. 일례로 보수 정당인 [[자유민주당(일본)|자민당]]은 전후 70년의 일본 정계 중 60년을 주름잡았다. 게다가 잃어버린 30년과 도호쿠 대지진 이후 일본의 우경화 분위기는 더욱 심화되었다.[* 참고로 2009년~2012년 당시 집권 정당은 자민당이 아니라 [[민주당(일본 1998년)|민주당]]이였다.] 물론 과거사 문제는 정치적으로 [[진보주의|진보]]/[[보수주의|보수]]를 나눌 문제는 아니지만 아무래도 보수우파보다 진보좌파가 과거사에 전향적인 것은 부정하기 어렵다. 따라서 전후 일본 사회의 보수적 분위기는 일본이 과거사를 전향적으로 바라보는 데 어느 정도 장애물로 작용하는 형국이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